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직후 미국 국무성 교환학생으로 메인주 Lewiston에서 1년을 살았다. 한국어가 구조적으로 차단된 그 1년이 지금의 크로스보더 M&A 업무의 초석이 됐다고 본다.
핵심 포인트
-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직후 미국 국무성 교환학생으로 떠났다. 아버지의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에 반강제로 떠난 결정이었다고 밝힌다.
- 이 프로그램은 홈스테이 비용과 공립학교 학비가 사실상 들지 않았다. 호스트 가정은 자원봉사로 학생을 받고 미국 공립학교는 무상교육이라, 항공권과 소정의 프로그램 수수료 정도가 전부였다.
- 2004년, 메인주 Lewiston의 한 가정에서 1년을 살았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시골 동네라 인터넷은 모뎀 수준이었으며, 학교에 한국인은 필자 혼자였다고 쓴다.
- 한국어를 쓸 기회가 구조적으로 차단된 환경이었다. "현대가 일본 브랜드 아니냐"는 질문을 진지하게 받던 시절이었고, 귀국할 무렵엔 한국어 단어가 먼저 생각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 학교생활은 온통 운동이었다. 가을엔 미식축구, 겨울엔 수영, 봄엔 육상을 하며 팀원들과 함께 지고 이기면서 언어보다 관계가 먼저 생겼다고 필자는 회고한다.
- 귀국 후 유급하고 한 해 아래 후배들과 졸업했다. 수능 성적이 원하던 만큼 나오지 않아 미국 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는데, 교환학생 경험 덕분에 망설임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고 쓴다.
- 필자는 이 1년이 지금의 크로스보더 M&A 업무의 초석이 됐다고 본다. 외국 카운터파트와 회의하고 문화적 맥락을 읽고 관계를 쌓는 능력이 메인주의 작은 동네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주요 숫자
“네가 사회에 나올 때쯤이면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돌이켜보면, 그 1년은 단순히 영어를 배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반론 · 충돌
- 이 글이 답하지 않은 것국무성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선발 기준이나 경쟁률, 어떻게 지원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2026년 3월, 필자가 스스로 "주말엔 개인 이야기"를 쓰겠다고 밝히며 시작한 회고 시리즈의 첫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