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필름 이익 비중이 거의 같았던 코닥과 후지필름은 12년 뒤 파산과 사상 최고 이익으로 갈렸다. 필자는 그 차이가 기술도 자금도 아니라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에 대한 정의였다고 본다.
핵심 포인트
- 코닥은 1975년에 이미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다. 1975년 12월, 코닥의 엔지니어 Steve Sasson은 세계 최초의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다. 3.6kg의 프로토타입이었지만 완벽하게 작동했다. 경영진의 반응은 냉담했다.
- 2000년 두 회사의 사업 구조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코닥은 필름 사업이 이익의 70%를 차지했고, 후지필름도 필름 매출 60%, 이익 70%로 같은 제품, 같은 위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 12년 뒤 두 회사는 정반대의 운명을 맞았다. 2012년 코닥은 파산 신청을 했고, 후지필름은 사상 최고 이익을 기록했다.
- 코닥의 실패는 기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딜레마였다. 코닥은 1989년에는 LCD 스크린과 내부 메모리를 갖춘 현대식 디지털 카메라까지 만들었지만, 필름과 인화지에서 대부분의 이익을 취하는 '면도기와 면도날' 모델로 제국을 세운 경영진에게 디지털 카메라는 자신들의 필름 이익을 파괴하는 주범이었다.
- 코닥은 위기를 직감하고도 미래의 팔다리를 잘랐다. 2000년대 중반 코닥은 미국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20%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했지만, 2007년 가장 높은 수익성과 미래 성장성을 가졌던 'Healthcare Imaging(의료 영상)' 사업부를 매각했다.
- 후지필름은 2004년 'Vision 75'로 현금 확보와 기술 해방을 택했다. 2000년 사장으로 취임한 Komori Shigetaka는 필름 시장의 붕괴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2004년 극단의 경영 계획인 'Vision 75'를 선포했다. 구조조정으로 현금을 확보한 뒤 R&D 부서에 전수조사를 명령했고, 18개월 뒤 필름 기술의 본질이 '화학 물질을 분자 수준에서 극도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 후지필름은 그 화학 기술을 화장품과 디스플레이 소재로 옮겼다. 2007년 Collagen과 항산화 기술로 기능성 화장품 'Astalift'를 론칭했고, 초정밀 코팅 기술로 LCD 편광판 보호필름 'FUJITAC'을 개발해 글로벌 70% 독점 지위를 확보했다. 필름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헬스케어·바이오 CDMO 기업으로 체질을 바꿨다.
- 2010년 필름 시장이 전성기의 1/10로 쪼그라들었을 때 후지필름은 더 단단해져 있었다. 필자는 두 회사의 성패를 정한 결정적 차이가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에 대한 정의였다고 본다.
주요 숫자
3.6kg
코닥이 1975년 만든 디지털카메라 프로토타입 무게
70%
2000년 후지필름 필름 사업 이익 비중
20%대
코닥 미국 디지털카메라 시장 점유율(2000년대 중반)
1/10
2010년 필름 시장이 전성기 대비 줄어든 비율
“귀엽네. 하지만 필름 장사에 방해되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 게.” “필름 시장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골든타임은 딱 10년이다.” “필름이라 정의하면 필름과 함께 죽습니다. 화학이라 정의하면 필름이 죽어도 삽니다.”
반론 · 충돌
- 이 글이 답하지 않은 것코닥이 헬스케어 이미징 사업부를 매각한 정확한 금액이나 후지필름이 제약사·바이오 기업을 인수한 금액은 이 글에 없다.
- 이 글이 답하지 않은 것후지필름이 화장품·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에서 실제로 얼마의 매출을 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의 사례를 다룬 회고이고, 이후 두 회사의 최근 실적은 다루지 않는다. 투자나 종목 추천이 아니다.